중년의 여성 두 명이 투 톱 체제로 서 있다. 이 한 문장만으로 영화의 코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빌런이 일상에 깊게 침투한 사회, 과거 친한 사이였으나 가치관 차이로 소원해진 두 명의 여성은 치열하게 사회를 살아가는 30대가 되어 마주치게 된다. 이들이 다시 만나며 어떻게든 히어로가 되고, 어떻게든 적을 물리쳐 도시를 구한다. 히어로 영화라면 응당 지니고 있어야 할 구성이므로 <썬더 포스>의 내용을 열거하는 데에는 스포일러 딱지를 달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단 이 영화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2021년에 나온 영화'라는 부분, 그리고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자 히어로가 되어 나서는 작품이라는 지점이다. 원더우먼, 캣우먼, 블랙 위도우가 그렇게나 활약하지 않았나? 그게 왜 차별점이 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썬더 포스> 속의 히어로는 여성이자 다수로 연대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부분에 있다. 전자는 숭고하고 강력한 영웅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라면, 후자는 군집이 되어 힘을 발휘하는 작은 사회인 셈이다.
<썬더 포스>의 전개는 특별히 참신한 게 없다. 기승전결이 맞춰져 있고, 히어로는 강력하며, 악당의 술수에 잠시 고전하지만 이내 세계를 구해낸다. 뻔한 내용의 연속이라 시청자가 예측을 하면서 보면 전부 맞아떨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용 자체보다 내용을 다루는 과정에서 대사나 행위 등의 구성 요소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전체적인 클리셰를 답습하지만, 그 클리셰를 구성하는 것들은 클리셰가 아니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사회적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불완전함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불완전한 이들이 모여 완전함을 꿈꾼다. 말처럼 잘 돌아가진 않고 딱히 완벽해질 생각도 하지 않지만, 손이 닿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제법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년 여성, 흑인, 미혼모, 동성애자, 후천적 변이를 갖게 된 인간들이 똘똘 뭉친다. 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했던 능력은 두 사람의 친구에게 나누어 주어진다. 각자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힘을 합쳐 싸워갈 수밖에 없는 것이 <썬더 포스> 속 히어로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물론 영화 속 소수의 특수성을 읽어내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바깥의 인간들이다. 영화 내부에서는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퀴어 프렌들리와 무관심의 배려가 공존한다. 참 이상적이고 좋은 세상 아닌가. PC 영화의 작위적임이나 B급 문화의 퇴색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 감상에 있어 무거운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썬더 포스>의 살짝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감성이 가벼운 웃음을 주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웃음을 줄 수 없는 요소를 철저히 배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인데, 지역적 특성과 정치 풍자를 절묘하게 엮어내기도 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접전처럼 보이는 정치 상황(우파와 좌파의 상징색도 완전히 같다), 백인 남성인 공화당 시장 후보와 흑인 여성인 민주당 시장 후보 등등의 소스가 상기한 소수의 연대성 및 온건 메시지와 엮이며 '민주당 영화'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 시카고의 시장인 로리 라이트풋은 흑인이자 동성애자이며 여성이다. 1년 전 미국을 휩쓴 대선까지 고려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만든 영화 같다. 의식하고 보면 글로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이 묻어 나오다 못해 뚝뚝 흐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사족을 달 것도 없이 킬링타임 용으로 제격이다. 보통의 히어로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썬더 포스>는 제목에 비해 조금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다. 적당히 흐름상 넘어가는 부분도 많고, 대단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고 감상하다 보면 크고 작게 웃음을 띌 수 있는 장면이 많다. 삼삼하지만 적당히 재미있다.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소수자 해학도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만 다뤘다. 인종도 성격도 직업도 다른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손을 잡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여전히 질리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가 10년은 더 나와야 지겨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민주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를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국수주의자나 보수주의자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썬더 포스> 대신 더 잘 만들어진 <슈퍼맨>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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