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 L'isle joyeuse
몇 달 전부터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을 꼽으라면 단연코 드뷔시의 <기쁨의 섬>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드뷔시의 피아노곡은 주로 모호한 선율, 5음 음계와 선법 사용 및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전통리듬의 사용으로 대표되며 일명 '인상주의 음악'의 지표로 불린다. 드뷔시 본인은 인상주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드뷔시의 음악은 선율 중심적인 음악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드뷔시는 '독일 낭만주의의 장대하고 논리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순간의 감정을 담기에 적합한 짧은 곡을 선호했는데'(마순영, 이영욱. (2010). 모네의 연작 회화와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에서의 자연.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32(), 155-179. 13p.) <기쁨의 섬>은 그러한 드뷔시의 성향을 집대성한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앙투안 바토의 회화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를 의식한 구체적인 악곡이기도 하다.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속 연인들은 비너스를 숭상하는 키테라 섬으로 떠나 사랑과 쾌락을 즐긴다. <기쁨의 섬>의 처음은 바로 이 키테라 섬으로 떠나며 헤쳐나가는 바다의 넘실거림을 암시한다. 음악은 전체적으로 도리안 선법과 같은 교회 선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 생경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리듬 및 넓은 음역대와 사이를 채우는 풍부한 음은 음악에 색을 덧입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기쁨의 섬>은 모티브로 삼은 회화가 있기에, 이를 의식하며 감상하면 쉽게 연인들의 낙원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비밀스러운 곳, 연인들을 축복하는 곳에서 사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환희가 곡 전체에 가득 묻어 있다. 종 잡기 어려운 박자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화성은 음악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환희감에 있다. 화성, 박자, 진행과 셈여림 모두 변화무쌍하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도 음악은 단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음의 목적지는 키테라 섬, 혹은 연인들의 종착지일 것이다. 막 사랑을 시작한 젊은 사람들의 (다소 대책없을 수 있는)열정과 설레임이 음악에 가득 묻어나온다. 음악의 기대감은 항상 최고조에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착하고 정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배가 섬을 향해 나아가듯이, <기쁨의 섬> 속 쪼개진 음표들은 곧 자신들에게 다가올 비너스의 축복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쁨의 섬> 의 연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 원래도 그 실력과 기교가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인데, 이 영상에서는 그가 연주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영상에서 2분 30초~35초 가량에 등장한다. 이 콧노래를 대체 몇번이나 다시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 길지 않은 짤막한 콧노래지만, 이 작은 소리를 인지하고 나면 음악 전체에서 콧노래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환희와 기쁨을 노래하는 음악에서 연주자도 그 환희의 가락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즐기지 못한 채 연주했던 내 과거가 떠오르기도 하고.
물론 모든 음악가가 연주하며 그 음악에 심취하고 자신의 내면 감정을 연주 행위로써 표출하려 하겠지만, 실제 연주 영상을 볼 수 없는 유튜브 등지에서 이런 연주자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음원이나 연주 영상에서 시각적인 요소 외로 연주자의 존재를 알아채는 순간은 가끔씩 온다. 폴리니의 연주 영상처럼 가느다란 콧노래를 부른다거나, 혹은 미세하게 페달을 밟아 나는 소음, 마디 속에서 호흡하며 함께 숨을 쉬는 소리. 아쉽게도 녹음된 음원에서는 연주자의 흔적을 연주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기쁨의 섬>은 연주자의 콧노래가 있어 더욱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즐거운 음악을 나뿐만 아니라 연주자도 함께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6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모두가 음의 환희에 빠져 있는 '기쁨의 시간' 이 아닐까.
참고: 최가람. "드뷔시의 기쁨의 섬 (L'Isle joyeuse)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2014.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