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

<소울> 리뷰

샐러드볼 2021. 2. 2. 20:56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해 문화·사회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며 소위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신종 우울 증세가 사회에 만연해졌다.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생겨난 우울은 질병의 종식 외에는 명쾌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받아들이고 포기하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소울>은 삶의 방식에 있어 꽤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디즈니 영화다. 꿈이나 도전, 용기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야망이나 꿈이 필요하지 않다', 혹은 '소소하고 작은 기쁨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건넨다. 디즈니의 주 타겟층이었던 유아동이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주제다.  

 

 주인공인 '조'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지만, 한편으로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연주 생활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이 존재한다. 그는 그렇게 음악을 하는 것이야말로 제 삶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진정으로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오지만, 영화를 시작한 지 몇 분 채 되지 않아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그런 그가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영혼 '22번'과 만나며 함께 삶의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 작품의 주 전개다. 

 

꿈 하나만 보고 살아가다 한순간에 좌절해버린 간절한 조와, 냉소적인 부분만 받아들여 살아보기도 전 삶의 의지를 포기한 22번의 견해 및 태도 차이와 시너지가 상당히 재미있다. 영화는 '삶에 의미와 목적이 꼭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묻는데, 22번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흥미와 의욕을 가지는 과정이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22번의 태도나 모습은 삶의 열정이나 목표를 강요당하고, 우울감과 반향심으로 똘똘 뭉친 우울한 현대인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이들에게 원대한 목적이나 성취가 아닌, 그저 살아서 걷거나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에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사소한 일로도 영혼은 충만해지고, 내일을 기대할 마음이 생길 수 있다. 22번의 생각과 행보는 비록 강렬하게 마음에 남지 않을지언정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변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원대한 꿈을 위해 움직이던 '조' 역시도 자신의 꿈이나 열정이 인생을 마냥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아지경에 빠져 머나먼 세계로 떠난 사람들도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결국 두 명은 인생에 대한 가치관도 태도도 다르지만, 주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담담히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니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떤 인생이 되더라도.

 

 홍보 당시 재즈 영화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 같지만, 재즈 음악은 영화의 상징과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며 메인 소재로는 쓰이지 않는다. 도리어 재즈는 '자유로움', '즉흥적임', 그리고 '열정'과 같은 키워드를 통해 성공을 갈망하는 예술가 조의 내면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지금을 즐기라는 메시지가 재즈 음악과 상당히 닮아 있는 느낌이다. 감독의 이전 작인 <코코>에서도 음악이 쓰였지만 <소울>에서는 좀 더 가치관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어 심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단 <코코>에서의 음악도, <소울>에서의 음악도 주인공의 민족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같아 보인다)

영화의 중심 주제와 맞닿아 있는 요소 중에는 삶과 죽음 / 냉소적(권태로움)과 열정 / 교직과 연주자와 같은 대비도 있다. 뉴욕의 현실적인 재즈와 사후세계 및 생전 세계의 신비로운 음향 차이, 현실에 안주하는 일과 꿈을 좇는 일의 차이 속에서 영화의 모든 요소가 중간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정말 디즈니 영화 치고는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반면 영상이나 음악의 완성도, 심오한 메시지와 별개로 디즈니 영화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역시도 선명하게 보였다. 참 좋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던 부분인데, 디즈니는 언제쯤 멘토와 멘티의 고정 패싱을 바꿀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영화 내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도 했지만 필요한 만큼만의 다양성을 챙긴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자는 소시민적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이 전부 소수자라는 점에서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작품 외적인 시선에서 보면 아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런 메시지를 기득권이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뉴욕에서는 멈춰서는 안 돼. 계속 걸어.” 몸이 뒤바뀐 상황에서 조는 22호에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을 종용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무작정 바삐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도 같다. 멈춰 서거나 눈에 띄는 일을 하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뒤처지거나 제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존재하니까. 뉴욕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갈 곳 없이 떠도는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꿈과 목표, 열의가 없다면 가치 없는 인생이 되는가? 그렇기에 멈추지 말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가? 안개처럼 떠도는 현대인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세계는 이룩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나 그 방식에 맞추어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저돌적인 삶이 마냥 행복하다고도 볼 수 없다. 22호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길을 걸어보기 위함일 수도 있다.

쉽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고 마주하는 누구나 고민과 우울로 처지는 현재, <소울>은 불행 속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영혼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깊은 충격을 남기지는 않지만 영화는 우리처럼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괜히 굴러다니는 낙엽이나 떠 있는 구름을 한 번쯤 쳐다보게 만든다. 사회적 침체기에 개봉해 더욱 빛나는 작품.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 시기에 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