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리뷰

2021. 8. 30.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을 시작한 지는 26년,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시리즈가 시작된지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에반게리온 Q>의 후속으로 끝맺음이 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9년이다. 어린 나이에 작품을 보기 시작한 사람이 어엿한 사회인이 될 정도의 기간인 셈이다. 그렇게 한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바뀌고 흩어져 과거가 된다.

세기말에 등장했던 작품이 퇴장하는 방식은 우리가 나이 들어가며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포스터에서 고하듯이, 에반게리온은 바뀌어가는 인간의 과거를 보내는 장대한 이별식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신극장판의 주된 비판점은 관객을 이해시키지 않는 무논리성이었다. 꾸준하게 비판을 받으면 고려할 법도 한데,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이하 에반게리온 다카포)는 과감하게 앞으로의 설명을 모두 포기해버린다. 관객에게 이야기의 전개를 납득시키는 대신, 이야기의 결말로 이끌어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어떤 식으로 세계가 변화했는지, 변화 지점의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저 두리뭉실한 언어로 지정되었을 뿐 누구도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는다. 상기한 점은 여전히 신경 쓰이고 관객을 자주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품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의 단점도 어느 정도 상쇄된다. 이것은 에반게리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에반게리온에 탑승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나씩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던 아이와 어른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지에 집중한다면 생각만큼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에반게리온 다카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나아가, 작품을 감상해왔던 팬을 작품 속으로 포섭시켜버린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필름에서는 끊임없이 과거 에반게리온의 잔재가 등장하며 이는 오마주 되거나 일부 가공되고 현실 위에 덧씌워진다. 익숙하고 괴로운 장면은 인간의 플래시백처럼 간헐적으로 등장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과거에서 눈을 돌릴 수 없으며, 그렇다고 기억을 지울 수도 없는 노릇. 관객은 영화 속에서 자신이 가졌던 추억을 메타(meta)적으로 돌이키게 된다. 그 추억이 추악하거나 황홀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그저 한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듯이 등장했다 사라질 뿐이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건네는 말 역시도, 자신들의 과거뿐 아니라 작품을 사랑했던 관객에게 건네는 말처럼 작용한다. 특히 어리고 부족했거나, 사회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혹은 타인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며 방에 틀어박혔던 오타쿠(마니아)에게 더욱 단호한 메시지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즐겨왔던 과거를 마주하게 되며 이별할 기회를 갖는다. <에반게리온 다카포>가 모든 에반게리온에게 작별인사를 하듯이.

 

 물론 인사에는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내포한 우울증, 사춘기, 종교, 성적 은유를 품고 꾸준히 사랑받으며 또한 증오받았던 과거를 떠올려보자. 성공한 작품은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겠으나 반대로 짐이나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것은 그에게도 아름다운 종점이 되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에반게리온> 시리즈 특유의 배경음악 부조화(Soundtrack Dissonance)는 여전하다. 아름답고 슬프다. 액션씬은 정신이 없고 중구난방이지만, 화려함만은 확실히 챙겼다. 조명과 구도, 인물의 배치는 애니메이션 연출의 극치에 가깝다. 선명한 배경과 색감에서 큰 고찰 없이도 전과는 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절의 메타포 역시 건강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전개는 갑작스럽고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오랜 시간 기획하고 만든 작품답게 내용적인 부분을 빼더라도 볼 만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가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변화하는 인간의 삶'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기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이해도 되지 않고 와닿지도 않는 영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인정하고, 결국 이별을 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건강하고 화려한 피날레가 되겠지만 말이다.

 

 포스터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영화로 에반게리온의 내용을 다시 돌이켜보았다면(da capo), 이제는 끝을 낼 때(fine)가 아닐까. 감독이, 영화 속 인물들이 이별하면 관객도 이야기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물론 26년간 쌓인 이야기를 2시간 30분으로 아름답게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이만한 끝이 없을 테다. 나 역시 해당 리뷰를 통해 매듭을 지으려 한다. 에반게리온이 없어도 인생은 계속되지만, 과거의 추억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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