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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이중성 : 누구나 기억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악기

2021. 6. 3.

1. 서론

 그 어떤 서양음악의 악기도 피아노만큼 대중적이지 못하다. 88개의 검고 하얀 건반으로 구성된 이 악기는 소규모 실내를 위한 업라이트의 형태로, 또는 공연장의 연주를 위한 그랜드의 형태로, 때로는 피아노와 유사한 전자 키보드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위치상으로는 교실 한구석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질 않나, 다목적 건물의 강당에도 마치 필수 인테리어 소품처럼 구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연주에 대해 흥미가 있거나 갓 배워보려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로 피아노를 추천받게 된다. 1990년대, 혹은 그보다 일찍 태어났으며 교육에 깨나 열을 올린 한국인 가정의 자제라면 지겹도록 드나든 피아노 학원과 소나티네를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은 칸칸이 나누어진 건물의 한 층에서 어지럽게 섞인 피아노 소리를 들어본 경험을 공유한다.

 이렇듯 피아노는 마주하기 쉬운 편에 속하지만, 반면 소유하기 어려운 악기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른다. 우선 휴대가 불가능하므로 적절한 보관을 위해 반드시 공간의 한 자리를 헌납해야 한다. 차지하는 크기도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는 가볍게는 몇백만 원에서부터, 크게는 천만 단위를 들여야만 한다. 구매 이후 피아노의 이용 빈도나 유지 보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좋은 도구의 값이 비싸게 형성되는 것은 상식이지만 피아노를 소유하는 데에는 많은 결심과 능력이 필요하다.

 교육적 목적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고, 설치된 상태라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으나 그것을 가정에 소유물로써 들이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실이 피아노를 이중적인 악기로 만든다. 음악 교육을 통해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했던 경험은 악기의 높은 시장가와 대비되어 경험자의 내면에 피아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친숙함과 더불어 악기의 고급성을 느끼게 된다.

 본 글에서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피아노가 고급 악기로서의 인식을 얻게 된 배경을 되짚어보며, 교육 및 사회적 측면에서 피아노가 가진 이중성의 출처를 간단하게 찾고자 한다.

 

 

2. 본론

 

. 피아노의 역사

 

 피아노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의 약자로, 건반 악기군의 대표로서 반주와 독주, 합주 등 다양한 음악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성과 넓은 사용범위에 비해 피아노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18세기로 상당한 최근이었다.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에도 반주와 독주가 가능한 건반악기는 존재했었는데, 오르간을 제외하고도 전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악기로 쳄발로(Cembalo, )와 클라비코드(Clavichord, )가 있었다. 쳄발로는 현을 잡아 뜯어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이며 클라비코드는 금속조각을 통해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타현악기였다. 두 악기 모두 건반악기로서 당시 널리 보급되었으나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했다. 먼저 쳄발로는 음향이 크고 선명해 연주회에서 주로 사용되었지만, 즉각적으로 강약과 같은 셈여림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었다. 반면 클라비코드는 당시 기술력하에 섬세한 음조절이 가능했으나 음량이 적은 탓에 주로 가정에서만 이용했다. 건반 기술자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이를 개선하고자 하여, 쳄발로의 몸체에 용수철을 이용한 해머 회복 장치를 도입해 개발한 것을 피아노의 시초로 본다.

 개발 초기의 피아노는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작곡가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츠는 갓 탄생한 피아노보다 클라비코드가 낫다.”1)며 기존 건반악기에 대한 선호 의사를 밝혔고, 당시 활발한 작곡 활동을 했던 모차르트도 클라비코드를 애용했다. 그러나 말년의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이용해 작곡한 것을 시작으로, 융화되기 좋은 소리를 가지고 즉각적인 강약조절이 가능한 피아노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반면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는 점차 쓰이지 않기 시작해 현재는 시대성을 재현하기 위한 역사적 유물로서만 남아 있다.

 피아노는 이후로도 연주자와 작곡가들의 요구를 반영해 꾸준하게 발전을 거듭했다. 현의 수를 추가하고, 건반의 수를 늘렸다. 1830년대에는 88개의 건반과 페달의 기능을 모두 갖춘 현대적인 피아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 피아노에 대한 사회적 인식

 

1) 혁명 이전

 18세기 초 피아노의 개발 이후 많은 음악가가 피아노를 이용하고 연주했다. 그러나 악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으므로 피아노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음악가와 상류계급 정도가 전부였다. 음악가는 궁정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어 하인 신분으로 일했으며 작곡하는 음악도 상류계급의 취향을 따라갔다. 따라서 음악가가 아닌 이상 악기를 독점하는 것은 귀족과 왕족일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의 모든 피아노 음악이 상위계급에 의해 소비된 것은 아니었지만, 명실상부 피아노는 지배계급의 소유물이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가져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귀중품이었다.

 

2) 혁명 이후

 1760년대부터 1820년대까지 넓은 시기에 걸쳐 행해진 산업혁명은 피아노의 생산을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시민이 음악 문화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정 계층의 전유물 위치에서 벗어나 비교적 많은 시민이 연주하거나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지배계급의 손에 고립되어 고급스러운 악기로 존재했던 역사로 인해 피아노는 사회 상류층의 상징으로 등극한다. 귀족 궁정 내에 외부인을 응접하는 공간에 비치된 건반악기 피아노가 귀족 고급음악 문화의 상징으로 간주된 것을 기반으로,2) 피아노가 가진 고급의 가치가 시민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혁명 이후 새로운 권력과 부를 잡게 된 중산층 시민들은 귀족의 삶을 흉내 내려 했다. 그리고 축적된 부를 과시하며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샀다.

 따라서 피아노는 당시 시민의 계급과 생활 수준 상승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가 되었다. 피아노를 구매할 정도의 경제력과 더불어 가정에서 피아노 연주를 즐길 여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가부장은 피아노를 구매하고, 가정의 여성들은 이상적인 가정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양을 쌓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가질 수 없었던 악기는 선택받은 부유한 시민의 손에 돌아갔다. 당시 피아노의 유행의 이유는 모든 음을 손가락으로 조율된 건반을 쳐서 만들어 내는 민주적악기로 칭할 정도로 다른 악기에 비해 일반인이 연주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한 악기이기 때문3)이기도 했다. 거기에 가정의 유행으로 건반악기 음악이 성행하고, 악보를 구하기도 쉬워졌다. 가정적이고 고급스러우며, 한편으로 쉬운 악기라는 사회 보편적 인식은 19세기를 기점으로 생겨나 굳어지기 시작한다.

 

 

. 근대 한국 속 피아노 현진건의 <피아노>와 성장기 한국

 

 대한민국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도입된 것은 언제일까? 국내 최초의 피아니스트인 김영환(1893~1978)에 의하면 국내 광무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마르텔 및 그의 피아니스트 배우자인 아멜리(Amalie)1905년에 도입해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보다 이른 1900326일에 사이드보텀의 아내 에피의 피아노가 부산을 거쳐 대구에 유입된 것4)을 구체적인 국내 피아노 도입으로 본다.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피아노는 교회음악과 연주를 위해 도입된 것이었으나 직후 일제강점기가 도래하며 피아노에 대한 서구적 사회의식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가정적인 고급 악기인 피아노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일하게 여겨지던 1920년대 후반의 한국에서 신여성이 갖추어야 하는 교양으로 급부상했고,5) 당시 모던걸의 현대적임과 부유를 나타냄과 동시에 우수한 가정에서 지녀야 할 소양처럼 여겨졌다. 문화생활은 곧 문명화였고, 우아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단란함을 유지하는 가족사회는 지식인들의 로망이었다.

 현진건이 192211월 발표한 단편 <피아노>는 서구 문화에 대한 근대 한국인들의 환상과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상징적인 단편이다. 해당 소설에서 피아노는 어엿하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미기 위한 하나의 소품이자, 서구적이고 고급스러운 지배계급에 대한 동경의 표시처럼 등장한다.

 

(전략)
"그러지 말고 한번 쳐 보구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야 무엇 있소."
이윽고 남편은 달래는 듯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잡히지 않았다.
"나…… 칠 줄 몰라."
모기 같은 소리로 속살거린 아내의 두 뺨에는 불이 흐르며, 눈에는 눈물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것을 모른담."
남편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웃고는,
"내 한번 치지."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궐도 이 악기를 매만질 줄 몰랐다. 함부로 건반 위를 치훑고 내리훑을 따름이었다. 그제야 아내도 매우 안심된 듯이 해죽 웃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참, 잘 치시는구려.“

- 현진건 <피아노>

 

 

 <피아노> 속 주인공 궐은 형식상의 지긋지긋한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 중등교육을 받은 젊고 어여쁜 처녀와 재혼한다. 궐과 아내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값비싼 가구로 집을 꾸미는데, 그러던 중 아내가 피아노를 들일 것을 제안한다. 두 명은 망설임 없이 훌륭한 피아노를 집에 들인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대로 피아노 구매를 제안한 아내는 연주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부는 오로지 가정을 꾸미고, 사치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피아노를 구매한 것이다.

 해당 단편과 같이 피아노를 지위 상승의 표현 도구로써 이용한 중산층 가정과는 다르게 실제로 피아노를 구비하고 연주할 수 있는 계층도 많았다. 부유한 계층의 자녀,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이화학당을 다니거나 개인적인 교습을 받으며 서구음악에 대한 지식과 연주실력을 키워갔다. 이들은 피아노가 구비된 집에서 가정음악을 연주했고, 19세기의 유럽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적인 가정과 음악교육에 힘썼다. 피아노는 당시에 구성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가정에 대한 기준 속에서 가족 구성원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설정하고 어린이의 고상한 심성을 기르기 위한 도덕적 오락거리였다.6) 피아노에 대한 선망과 선호는 광복이 찾아온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은 물론이다.

 

개중에는 단결을 방해하는 언동도 없지 않어 어린 아이와 백발 로인이 수백리 같은 무한한 고총을 늣겨가며 것는 것도 본 척 만 척 소개짐인지 이사짐인지 알 수 없는 피아노 응접 셋트 등을 자동차에 싣고 달려가는 호화객이나.7)

 

 전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피아노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았다. ‘정 트리오로 유명한 정명훈 일가에서 피아노를 싣고 피난을 갔던 일화8), 전쟁 중에도 피아노 위문 공연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당시 피아노가 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가치를 형성하고 선호 받았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피아노는 일제강점기 당시 서구적이고 과시적인 상류계급의 물건으로 전파되었고, 지배계급의 물건으로서 가지는 사치성은 산업 사회에 접어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생산기술의 발달을 통해 국내산 피아노가 활발하게 수출되기 시작했지만, 여러 번의 경제 위기를 겪은 국민들에게 피아노의 소유와 교육을 통한 연주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삼익 악기, 영창 악기 등이 활발한 사업을 전개하며 피아노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악기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시기는 계층과 상관 없이 모두가 음악 교육에 매진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잠을 줄여가며 공장기숙사에서 피아노를 치는 여공의 이야기와 피아노를 배우는 딸을 바라보는 노동자 아버지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피아노는 중산층뿐만이 아닌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성취와 계급 상승의 바람을 드러내는 악기였다.9)

 

 

 

. 현대 한국 속 피아노 사교육 열풍

 

 피아노는 대량 보급된 이래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악기가 되었으나 이를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상류계급의 영역에 한정된다. IMF를 포함한 여러 번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악기와 음악 교육이 다시 여유 있는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듯 피아노는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큰 악기이다. 그러나 이를 소유할 수는 없더라도,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절 학원이나 학교를 통해 피아노 및 연주를 접한 세대10)는 소유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피아노 교육의 추억과 기억, 혹은 경험은 곧 다음 세대에게 이어진다.

 교육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국민적 정서, 그리고 경제적 안정이 다시금 찾아오며 한국에는 사교육 열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태권도 학원, 발레 학원, 미술 학원 등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자본 아래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이었다. 피아노 학원은 교육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으며 설치형 악기가 가지는 이점으로 인해 사교육 열풍의 큰 축을 담당했다. 학원에 가기만 하면 질릴 때까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만질 수 있었던 시절, 현세대가 피아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은 당시 사교육 열풍에서 기인했다고도 볼 수 있다.

 

 

 

3. 결론

 

 사교육 열풍은 사그라들었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학원생이 감소하고, 음악 교육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도 전과 같지 않다. 피아노 학원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그렇지만 한때 피아노 학원에 다녀봤던 시민들은, 혹은 모종의 사정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민들은 성인 혹은 늦은 나이가 되어서도 피아노 연주에 대한 꿈을 꾸곤 한다.

 피아노는 탄생한 이래 귀족과 부르주아를 비롯한 지배계급의 소유물이었다. 피아노의 소유가 일반 시민에게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사회의 전반적 부흥이 도래했을 때뿐이었다. 피아노를 대체할 수 있을만한 전자피아노나 키보드와 같은 악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 피아노 자체가 가지는 사치스러움은 긴 역사 속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또한 일부 중산층 이상의 계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전문 음악 교육의 존재 역시 피아노를 명품으로 만드는데에 일조했다.

 반면 경제적 부흥과 피아노 생산기술의 발달은 잠깐이나마 일반 대중에게까지 피아노를 누릴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시민들은 피아노를 소유하기 보다 대여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음악 교육을 받고 개인의 예술적 시각을 넓혔다. 문제는 피아노를 경험으로써 소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품이 가지는 과시적 특성과 더불어 교육에 대한 경험과 열망은 이후 세대에 사교육 열풍이라는 형태로 이어진다. 자라나는 시민들은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를 체험하고 이에 대한 친숙함을 경험에 새긴다. 그리고 값비싼 피아노의 존재를 사치품으로 여기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피아노는 경험과 경제적 우월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이중적인 악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만족감은 피아노의 유사품으로는 느낄 수 없다.

 정장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가, 연주뿐 아니라 감상에도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한 피아노 음악, 그리고 상기한 특성으로 인해 경험 및 소유 욕구를 자극하는 악기 피아노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악기는 마치 경제적/잠재적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물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러한 이중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취미로 악기를 접하는 시민에게 있어 사치보다 경험이 우선되어야 한다. 음악의 실천을 통해 미적 감각과 성취감을 키우는 것, 그리하여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청각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이 음악의 본질이다. 피아노를 통해 유익한 경험을 쌓았던 사람으로서, 피아노라는 악기가 단순한 명품보다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도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본 글을 작성하였다.

 

 


미주

1) 스튜어트 아이자코프, 피아노의 역사:피아노가 사랑한 음악, 피아노를 사랑한 음악가, 포노(2015), 39p, 재인용.

2) 조연숙.(2016). 19세기 독일시민가정에서 나타난 여성들의 피아노음악. 음악논단, 36(0): 25-62.

3) Stefana Sabin, Frauen am Klavier Skizze einer Kulturgeschichte (Frankfurt am Main: Insel, 1998), 12. 재인용.

4) 손태룡.(2013). 한국의 피아노 유입과정 고찰. 음악문헌학, 4(0): 9-85.

5) 박혜성. (2014). 한국 사회에서의 피아노의 문화적 의미. 한국예술연구, (9), 75-98.

6) 정지영. (2017). ‘가정음악’ 담론과 식민지 조선의 가정 형편. 페미니즘 연구, 17(2), 157-188.

7) 『조선일보』, 1950.12.28.

8) 정상영. '남다른 교육열…전쟁때도 피아노 싣고 피난'. <한겨레>. 2011.

9) 강명구, 「한국노동계급문화의 담론: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문제 틀」, 『이론』, 1993.

10) 본 글에서는 해당 사례의 대표적인 세대를 7080세대 및 X세대로 간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의 맥락을 고려하여 Y세대는 포함하지 않았다. 글쓴이 각주.

 

 

이외 개인적으로 공부한 자료와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만, 고증 혹은 이론적 오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을 지식의 거름으로 삼고, 바르지 않은 부분은 고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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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11

2021. 4. 11.

 창작이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공상이나 이상 등을 하나로 녹여내 창조하는 행위다. 자신이 가진 언어와 표상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가치관과 정신은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창작물의 소비자는 특정인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이를 내면화한다. 인지하고 소비했다면, 이후로는 감상을 통해 재생산을 시작한다. 소비자는 창작의 어떤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이를 받아들인다. 최종적으로는 창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로 꺼내게 된다. 일련의 수용 과정에서 소비자는 특정인의 가치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흡수하게 되는 셈이다. 창작에 대한 호불호를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감성일지라도 결국 창작물이 가지고 있는 특정인의 사상과 관념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국제시장>이나 <명량>을 감명 깊게 봤다고 말하는 사람을 섣부르게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로 몰고 가려는 의도는 없다. 단순히 그런 영화의 액션이나 음향,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영화나 만화가 강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감상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특히 그 메시지가 노골적일 정도라면 말이다. 한 번쯤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급변하는 2021년에도 장애인, 여성, 노인과 아이, 퀴어, 이외 수많은 약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유린하는 창작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 단순한 오락으로 삼으며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참 좋겠지만, 기저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읽어내고자 하는 사회에서 특정 창작에 대해 좋다고 말하는 행위는 강력한 관념의 표현이자 권력 행사가 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어떤 음악이 싫다고 말하는 것, 혹은 그 드라마의 어떤 인물에 공감했다는 단순한 감상도 여럿이 뭉쳐지면 가치관을 뒤집어쓰며 강력해진다. 그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라면 더더욱이다. 그러니 폭력적인 영화를 사랑하고 차별적인 만화를 소비하며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 속 도덕적 악인의 손을 들어주는 이들은 간접적인 비평의 권력자가 된다.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동조하며 이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등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의 호는 극도로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창작물에 국한되어 있었다. 반면 장애인의 권익 보호나 성평등적 메시지를 담은 모든 창작물은 불호했다. 이를 직접 말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호불호를 강력하게 피력할 수 있다는 것은 막강한 힘이다. 그 창작물 속 가치관이 사회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바닥 아래를 받쳐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면 아주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조심스럽게 화두에 등장한 성평등 및 퀴어 프렌들리 창작물 이야기에 대해서는 기이한 분위기가 이어졌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는 빨리 묻어버리고 싶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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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코코> 속 음악의 역할 : 이데올로기 표현과 갈등 해결 수단으로서의 음악

2021. 3. 19.

 락이나 힙합으로 대표되는 하위문화의 음악은 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도 한다. 넥스트의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와 같은 음악은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면 군가와 같은 음악은 애국심 고취를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며, 군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이를 제창한다. 사회적 시각에서 음악이라는 도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사상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음악의 의미와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픽사 제작; 디즈니 배급 영화 <코코> 속 음악은 멕시코의 음악 문화와 민족성을 함양하고 있으나, 동시에 음악을 가족사회에 대한 저항 혹은 합일적 도구로써 이용한다. 음악이라면 치를 떠는 대가족에서 태어난 주인공 미겔은 가족이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 남몰래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 자신을 억압하는 가족에 대한 반감을 품은 미겔에게 있어, 음악은 최종적인 자아실현뿐 아니라 저항적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반면 가족의 생각은 다르다. 멕시코 사회에서 가족은 신성한 것이며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의무다. 스페인의 지배하에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멕시코인들은 보수적 가치관을 반영해 가족사회를 공고히 지키려고 한다. 이미 가장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음악을 통해 도피한 미겔의 가정에서(비록 추후 이것이 오해였음이 밝혀지지만) 음악 행위는 신성한 가족 이데올로기와 구성원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코코>의 전개 속 음악은 미겔과 그의 가족이 각자의 이념을 투영하는 각축의 장인 셈이다.

 

자녀를 책임져야 할 의무를 버리고 집을 떠나버린 가장에 대한 배신감이 그 근원적 요인(각주:가족 단위로 음악을 반대하는 이유)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버린 가장이 택한 길이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의 아내 이멜다로 하여금 음악 자체가 가족 구성원의 공동체적 의식을 해체시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유슬기. "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음악의 특징 및 기능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2018. 서울


 그러나 작중 헥터가 사실은 ‘가족을 위해’ 끝까지 음악을 고수했음이 밝혀지며 <코코> 속 음악은 가족 이데올로기의 안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확립한다. 음악 행위자(미겔의 가족)가 부여한 가족적인 의미에 따라 영화의 갈등과 의문이 해결되고, 음악은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는 도구로써 결말에 함께하게 된다.

 음악이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예술로 존재할 때 그것은 음악 내적인 요소와 미학적 관점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음악이 영화 혹은 드라마와 같은 타 매체에서 부차적 요소로써 등장할 때, 청취자는 음악 판단에 있어 그것의 도구적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코코> 속 음악이 부여받은 역할은 가족의 안정과 반대되는 불안정이자 갈등 해결의 궁극적 수단이다. 음악은 멕시코인의 민족성이 추구하는 대로, 가족을 수호하며 운명에 순응하고 행복에 기여한다.


 문화 속 음악은 언제나 특정한 이념을 무의식적으로 수용 및 생산한다. <코코>는 가족의 정과 힘, 그리고 보답과 성취를 보여주는 따뜻한 음악영화다. 반면 음악을 이용하는 방식 아래에는 작품의 갈등 해결을 위한 극적 요소와 더불어 멕시코의 전통적인 가족주의적 가치관이 함양되었음을 인지하고자 하였다.

 

 

 

참고: 최진옥. "한국과 멕시코의 가족문화 비교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韓國外國語大學校 國際地域大學院, 2010. 서울



샐러드볼/리코타

정신차려 그 녀석은 마초다

2020. 10. 31.


"여자아이는 싸우면 안 돼!" 의 주인공 에미야 시로를 기억하는가. 에로 남성향 게임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가 출시된 지는 벌써 16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게임의 애니메이션화도 여러 번 되었으나 에미야 시로의 이 대사는 명대사 취급받아 2020년까지 전해지고 있다. 칼을 들고 중갑으로 무장한 사람을 보고도 프레임에 갇혀 '여자아이' 취급을 하는 것도 웃기는데, 그의 가치관 속에서 여자아이는 싸워서는 안 되는 연약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도 웃기다.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싸움, 전투, 육체를 이용한 과격한 활동은 여전히 남성성의 상징이며 여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처럼 받아들여지기에 십상이므로. (2020년에도 이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있냐는 의문은 갖지 말자. 이런 사람 정말 많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성 문화, 혹은 이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그것을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통틀어 마초(macho)라고 부른다. 에미야 시로의 과거까지 고려하여 그의 '여자아이' 발언은 마초이즘과 더불어 PTSD 발현의 영향이 있다고 봐도 좋겠다. 일본의 창작물에서 이러한 마초이즘은 발에 챌 정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마초 국가니까. 2020년 들어서까지 남성과 여성의 역할 고착화를 강력하게 어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문화 사이사이에 마초이즘이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발생한다. 과도하게 남성주의적인 것이 마치 과도한 여성주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마초는 여성주의가 아니다. 극적인 남성성―남성은 모험하며, 여성은 집안일을 한다 추구하다보니 여성을 과보호하게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여성을 보호하고 숭상하며 때로는 절대시하는 행위가 '여성을 떠받드는' 혹은 '여성을 우위의 존재로 여기는' 행위처럼 여겨진다. 그리하여 마초는 어영부영 다수에 의해 여성주의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마초이즘에 빠진 일본뿐 아니라 대다수의 남성주의 추구자들이 저지르는 오류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속 대표적인 마초로는 <원피스>의 상디가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주변 여성 캐릭터를 떠받들며 그들의 손에 물 한 방울 묻지 않도록 한다. 그러므로 페미닌한 존재로 여겨지며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만다. 그러나 그의 여성 동료인 나미나 로빈이 정말로 보호받아야 할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가 여성 캐릭터를 정말로 존중한다면 그들의 의사를 우선 물었어야 한다. 마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대척점에 있다. 그의 여성에 대한 진정성을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과도한 용어 오용을 지적하고 싶은 쪽이다. 


 일본 창작물의 상당수가 두 가지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상대가 숭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든 아니든, 여자아이를 지킨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않는다. 그럴수록 남성의 역할을 공고히 하는 마초가 될 뿐이다. 따지자면 어감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정말 대단한 '마초'라고 하면 아무리 봐도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용어를 잘못 사용할 셈인지.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는 부분이 대단히 유감스럽다.




<아쿠다마 드라이브> 4화를 보고 든 생각이다. 여성 캐릭터에게 덜 강한 공격을 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주변 인물이 그를 더러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자막에는 [여성을 지나치게 감싸는]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애초 이런 장면에 페미니스트라는 대사를 왜 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여자에게 무르다고 표현하면 안 되었던 것인가?



샐러드볼

피아노의 이중성 : 누구나 기억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악기

1. 서론 그 어떤 서양음악의 악기도 피아노만큼 대중적이지 못하다. 88개의 검고 하얀 건반으로 구성된 이 악기는 소규모 실내를 위한 업라이트의 형태로, 또는 공연장의 연주를 위한 그랜드의 형태로, 때로는 피아노와 유사한 전자 키보드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위치상으로는 교실 한구석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질 않나, 다목적 건물의 강당에도 마치 필수 인테리어 소품처럼 구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연주에 대해 흥미가 있거나 갓 배워보려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로 피아노를 추천받게 된다. 1990년대, 혹은 그보다 일찍 태어났으며 교육에 깨나 열을 올린 한국인 가정의 자제라면 지겹도록 드나든 피아노 학원과 소나티네를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은 칸칸이 나누어진 건물의 한 층에서 어지럽..

2021 04 11

창작이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공상이나 이상 등을 하나로 녹여내 창조하는 행위다. 자신이 가진 언어와 표상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가치관과 정신은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창작물의 소비자는 특정인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이를 내면화한다. 인지하고 소비했다면, 이후로는 감상을 통해 재생산을 시작한다. 소비자는 창작의 어떤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이를 받아들인다. 최종적으로는 창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로 꺼내게 된다. 일련의 수용 과정에서 소비자는 특정인의 가치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흡수하게 되는 셈이다. 창작에 대한 호불호를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감성일지라도 결국 창작물이 가지고 있는 특정인의 사상과 관념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물..

디즈니 영화 <코코> 속 음악의 역할 : 이데올로기 표현과 갈등 해결 수단으로서의 음악

락이나 힙합으로 대표되는 하위문화의 음악은 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도 한다. 넥스트의 와 서태지의 와 같은 음악은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면 군가와 같은 음악은 애국심 고취를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며, 군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이를 제창한다. 사회적 시각에서 음악이라는 도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사상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음악의 의미와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픽사 제작; 디즈니 배급 영화 속 음악은 멕시코의 음악 문화와 민족성을 함양하고 있으나, 동시에 음악을 가족사회에 대한 저항 혹은 합일적 도구로써 이용한다. 음악이라면 치를 떠는 대가족에서 태어난 주인공 미겔은 가족이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 남몰래 음악에 대한 꿈을 키..

정신차려 그 녀석은 마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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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7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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