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용 스포일러 있음!!!
혐오란 불결함이나 증오심을 느껴 무언가를 기피하고자 하는 강렬한 부정의 정서다. 나카지마 테츠야 감독은 비정상적임에도 그 비정상적 성질에 좌절하기보다 살아나가기를 택하는 마츠코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2020년 들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을 다시 보면 이 영화는 용기보다 좌절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불행이 닥쳐도 살아나는 비극의 신데렐라인 마츠코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꿋꿋하지만(그렇기 때문에 더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를 둘러싼 세상의 풍파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2006년 개봉한 오래된 영화에 딴지를 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는데…일단 봤으니 하고 싶은 말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서 '혐오스러운 인생이었다'는 평가를 듣는 마츠코. 그의 조카 쇼는 25년 전 홀연히 집을 떠났다가 돌연 시체로 발견된 고모, 마츠코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마츠코의 소지품을 정리하고, 주변인들과 만나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쇼는 혈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던 마츠코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그를 냄새 나고 더럽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를 아름다운 신 같았다고 말한다. 쇼는 몇번이고 인생의 끝자락에 마주하지만 지지 않고 사랑으로 이겨내는 마츠코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이라 생각했던 그와 접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며 말미에는 마츠코의 인생에 대한 혐오를 전면으로 부정한다.
속은 지나칠 정도로 불행하나, 뮤지컬 코미디 형식과 밝고 화려하게 꾸며진 겉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함을 돋보이게 한다. 내용과 영상의 괴리가 무척 심해서 아이러니를 넘어 살짝 기괴하다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물론 마츠코의 비극적 일생을 그 분위기에 맞게 연출했더라면 끝까지 보기도 힘들었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말…괴로웠기 때문에….) 동시에 꽃, 음악, 과장된 액션으로 꾸며진 연출로 마츠코의 삶에 남아있는 희망과 사랑이 극단적인 형태로라도 남아있음을 증명한다.
단순히 비극적인 내용이라는 감상으로 끝내지 않고 짚어가고픈 부분이 있다면, 마츠코의 불행과 타자에 의한 혐오는 모두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마츠코의 일생에서 사랑을 준 것도, 구원을 준 것도, 그의 삶을 끝나게 했다고 여기게 한 것도 사회다. 견고한 가부장과 남존여비적 사고의 아래에서 마츠코는 자신을 휘두르는 사람―권력을 쥔 남자―에게서만 평안을 얻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아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아이는 성장하여 자신과 함께 있어 줄 사람에게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사랑과 평화란 없다. 하물며 자신을 대체품으로 여기는 존재들에게는 어떤가. 폭력과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어도 함께 있는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마츠코는 가부장에게 있어 '휘두르기 쉬운 약자'로 여겨져 유린당한다. 이 악순환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립심을 잃은 마츠코는 권력자의 말이나 기호 따위에 의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마츠코는 자아의식을 거의 다 잃고 방황하다,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까지 그의 삶을 희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마츠코는 비극과 불행 속에서도 삶을 이어갔던 과거형의 희망으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립하여 스스로 성공을 꾀하는 바람직한 모습은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의 인생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주변인들의 '마츠코'라는 인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실제로도 그의 조카였던 쇼는 막다른 길에 몰렸던 마츠코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현실과 겹쳐보며 그의 인생은 혐오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러나 마초적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와 그가 겪은 구조적 불합리함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티의 권력 사회가 만들어 낸 실패한 인간, 자신들이 숨기고픈 치부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가지는 것이다. 혹은 억압되고 휘둘린 존재의 살아가겠다는 의지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던듯 하다.
일례로 이 영화에서 얼마 되지 않는 마이너리티이자, 마츠코의 삶에서 수평관계로 함께했던 사와무라 메구미는 단 한 번도 그의 삶을 추하다 표현하거나 멸시한 적 없다. 가족으로서 사랑하며 동시에 질투했던 쿠미도 마찬가지다(비록 쿠미는 마츠코의 빛나던 시절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마츠코는 자신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살아간 불행의 인물이었지 혐오의 인물은 아니었다. '혐오스런'이라는 수식어는 마츠코를 삶의 불행으로 밀어 넣은 권력자들이 제 발 저린 것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다.
마츠코의 삶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숭고하고 맹목적인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 사랑을 제대로 보답받지 못했으며 삶의 외압을 극복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살아간다' 라고 말하며 희망찬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다소 처절한 비극이지 않나. 물론 사람의 인생이 어떠한 개념과 감상으로 차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지만, 그 안을 알기 위해 내다본 마츠코의 인생이 너무 불행한 나머지 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도저히 느낄 수가 없었다. 제목에서 빠진 부분을 꺼내오자면 <혐오스런 (사람들에 의해 힘들었던) 마츠코의 일생> 정도가 아닐까…. 마츠코가 당한 불합리한 일들은 이제 비극을 위한 자극적인 장치로만 쓰이지 않는다. 도리어 극복하고 타파해야 할 과제로써 주어진다. 각종 혐오와 싸우며 사람의 인생을 재단하지 않으려는 2020년, 마츠코가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좀 더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었을 테다. 지나간 구시대를 되돌아보고, 그 삶의 비극을 다시 읽어보려 하는 쇼 같은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우선 감사하게 되는 영화다. 정말 해맑게 우울해서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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