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

<The Lighthouse> 리뷰

2020. 9. 17.

!!영화 내용 약 스포일러 있음!!






 고립된 공간에 갇혀 서로를 의심하고 물어뜯다 마침내 광기에 빠져 자멸한다. 어떤 부연설명도 없이 이 영화를 설명하자면 상기한 한 문장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특별히 대단한 소재도 아닌 것이, 공포와 광기는 언제나 맞닿아 있는 데다, 정상적 의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일상적인 모든 것이 광기이자 공포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지 않나. 등대가 있는 이 섬에서는 인간이 일으킬 법한 대체로 모든 종류의 '비일상적' 광기가 펼쳐진다. 고립되고 동떨어져 믿을 것 하나 없는 인간들은 살기 위해 광기에 취하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광기는 죽음을 불러오게 된다. <The Lighthouse>는 실제 1801년에 일어났던 「스몰스 등대 비극」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2019년에 나왔지만, 흑백에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을 가져 마치 고전영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감상자를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하고 기묘한 촬영기법, 등대라는 배경에 끌려 보게 된 영화였지만 노골적인 광기는 불쾌하게 다가올 때가 있는 법이었다...


 19세기 후반. 뉴 잉글랜드의 한 등대에 에브라임 윈슬로라는 청년이 4주간 조수로서 일하기 위해 도착한다. 토마스 웨이크라는 이름의 등대지기 노인은 그에게 온갖 궂은일을 시키고 원칙을 내세우며, 두 명의 사이는 불편하게 유지된다. 고된 노동과 바다의 기묘한 전설을 듣던 에브라임은 기묘한 환각이나 악몽 따위를 꾸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등대지기인 토마스 웨이크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이야기 속 등대지기 조수처럼 점점 미쳐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근무 기간인 4주가 다 되어가지만, 동시에 악천후로 인해 보급선이 도착하지 않아 두 명은 기약 없는 지옥에 갇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육지와는 다른 삶을 찾겠다고 했던 에브라임 윈슬로도, 오랜 시간 바다에서만 자신을 보내 신화를 숭상하는 사고가 생긴 토마스 웨이크도 멀쩡함과는 거리가 멀다. 타인을 만날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어서도 있겠으나, 두 명이 등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보면 세상으로부터 유배당한 것처럼도 보인다. 즐길 수 있는 건 술밖에 없으며 사람 대신 동물의 울음소리만 가득한 섬 위의 등대는 두 남자가 갇힌 감옥이고 지옥이다. 처음부터 멀쩡한 삶의 범주에 들지 못했고 그릇된 욕망으로 가득 찬 두 명은 등대 속 죄인의 입장으로서 살아간다. 혹은 오로지 노동과 권태, 광기로만 찬 지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악인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상대에 대한 선한 마음이나 배려심을 가졌더라면 이 생활은 좀 더 오래 지속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만의 욕망과 불안을 가진 두 명은 쉽게 섞이지 못한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은 서로의 욕망으로 인해 깨져버린다. 타인을 경쟁자로서 적대했기 때문이다. 연대하여 살아가도 버텨내기 쉽지 않은 극한의 상황에서 둘은 이성보다 순간의 쾌락을 택한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넘나들기만 하는 두 명이 어떻게 서로 힘을 합쳐 지금을 이겨내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대체 몇 번이나 서로 정상적인 대화를 하길 바랐는지 모른다. 물론 처음부터 내재한 광기를 가지고 있던 두 명이 이성적인 대화를 하진 못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등대는 바다의 수로를 잡아주기 위한 길잡이로서 역할을 한다. 어두운 바닷길에서 유일무이하게 빛을 비춰주는 등대는 그야말로 앞길을 인도해주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러나 <The Lighthouse> 속의 등대에는 그다지 신실하고 성스러운 의미가 없다. 그저 더러운 욕망 속 하나의 집착적 대상이다. 이것이 보는 사람에게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킨다. 토마스 웨이크에게 있어 등대는 독점의 대상이며 에브라임 윈슬로의 상상 속에서 등대는 성적인 존재로까지 변모하기까지 한다. 전자의 경우 인물 나름의 신앙에 기반한 집착처럼 보이지만, 등대의 숭고한 역할에 대한 집착은 아니다. 그저 어둠과 광기 속에서 유일하게 앞을 비추는 빛을 가지고 싶을 뿐. 영화 속 대사를 차용해, 무생물에 집착하는 두 인물은 말 그대로 '광기에 눈이 먼 사람'들인 것이다. 미쳤다는 걸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광기를 에로티시즘과 엮어 표현하는 것은 이미 질릴 만큼 봤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진 못했고…좀 불쾌했다.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는데…실제 영화 분석에도 있는 이야기 같아서 좀 괴롭다. 두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고, 폭력과 전우애(혹은 업계에서 브로맨스라고 하는 것)를 넘나들며 육체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사회적 남성성으로 정의되는 사항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은 이러한 남성성을 발휘하여 주도권을 잡는 일이었다. 영화의 광기는 단순히 이상행동뿐 아니라 살아온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두 주인공의 고착된 생활방식에서도 발현된다. 서로에게 공격성을 보이고 위계주의를 고집한 끝에 결말은 파멸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도 광기지만, 자신의 방식을 놓지 못하는 것도 고집이고 광기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내재한 욕망이 극단적으로 두드러진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공포와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연출은 어쩔 수 없는 불유쾌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불쾌감이겠지만, 공포 영화에서 동물을 학대하거나 이상성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적나라하게 필름에 담아내는 건 과연 작품 속 광기일까. 아니면 감독의 광기일까. 심리적인 공포와 두 명이 미쳐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것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만큼 답답하고 나쁜 기분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느낀 것은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대화를 나눠야겠다'라는 자기반성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