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 리뷰

2020. 8. 20.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작품이라고 하기도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든다)을 리뷰(이게 과연 리뷰인지도 모르겠다)하는데 쓰는 시간과 활자가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나는 볼 게 없을 때 라디오처럼 이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처음 국내에 배급되었을 때 한 번, 넷플릭스에 올라왔을 때 두 번. 각종 이세계 전이/환생 작품을 자주 찾아보기도 하는지라 슬슬 예의상으로라도 이걸 남겨야 할 때인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SNS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갓애니'라는 이름을 달며 꼭 봐야 할 애니메이션으로 회자하는데 이건 반어법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갓스러움이 있다면 아마 가끔 한 번씩 나오는 신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 문단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 이 애니메이션을 보지 말기를. 이거 볼 시간에 직접 한 편 쓰시면 더 재밌을 거예…….


 ‘평범한 고등학생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사망하고, 이세계에 부활해 전의 삶과는 다른 판타지와 로망, 성공을 만끽한다’ 는 시놉시스 자체는 특별함이 없다. 밀레니엄 세대 이전 세기말로 대표되던 8~90년대의 이세계물이란, 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고 있으며 모험과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그 당시의 이세계물이 좀 더 이세계라는 개념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지몬 무인편, 마법기사 레이어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이세계란 현대인의 지식이 닿지 않는 영역이었고, 초인적인 존재와 신비한 것들이 모여있는 마법의 세계였다. 그러나 21세기는 개개인의 관념 속에서 새로웠을지언정 객관적으로는 언젠가 와야 할 당연한 시간의 연속이다. 2010년에 들어 나온 이세계는 이러한 무정한 현실을 반영하듯 신비함보다는 익숙함을, 고난보다는 쉬운 돌파구를, 교감보다는 빠른 소유를 원했다. 사회에서 낙오감을 느낀 사람들은 빠르게 하위문화―그중에서도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이상의 세계로 도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도피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 아닐까.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라는 작품은 이 이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범람한 결과 나와버린 처참한 클리셰와 이지 고잉의 집합체이다. 주인공은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왜냐하면 살아있어봤자 좋은 일이 없으니까. 주인공은 신의 비호를 받고 거의 무적에 가까운 힘을 얻는다. 왜냐하면…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건 귀찮으니까. (한 줄, 한 컷만으로 강해지는 세상에서 왜 현실을 연상시키는 수난을 묘사해야 하는가) 그 힘을 이용해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에게 멋진 연애상대가 되어준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렇게 타인과 쉽게 친해질 수 없으니까.


 이 작품의 코어는 이게 전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귀찮으니까', '번거로우니까', '필요 없으니까', '그걸 바라니까' 그렇게 전개되고 김빠지는 결실을 얻는다. 현대의 지식을 이용해 빛을 발하는 소재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될 수 있는 나름의 참신성이라도 챙겨보려고 골몰하는 작품이 있나 하면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 이걸 그 대표작으로 걸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작품에서 현실에선 안 이루어질 일을 마구 저질렀고, 그 결과 이세계물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현실성이 과하게 떨어진다. 손짓 한 번으로 사자가 생자가 되며 하루에 감사 인사를 열 번은 들을 수 있는 삶. 아마 작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이 작품 정말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다.


 작품의 제목 속 '스마트폰'이라는 존재가 바로 이 작품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기본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기능, 생존에 필요한 기능까지 전부 갖춘 스마트폰은 명실상부 삶의 만능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스마트폰에 의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스스로가 자각하고 발전시켜야 할 능력들은 퇴화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가 되었으니까. 작품 속에서 이세계는 곧 스마트폰처럼 만능의 존재다. 그리고 필수품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에서 스마트폰의 사용 빈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인공이 다재다능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글의 끝에서 이 작품의 장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반면교사가 된다는 점! 이제는 이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누군가의 자기 위로를 위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수준은 아니어야 한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어려움 없이 모든 걸 이루어내는 욕망덩어리는 역효과만 일으킨다. 소중한 시간을 더 좋은 작품에 쓰세요. 아무리 다른 세계로 도망치고 싶어도 이렇게 떠먹이는 건 좀.

'양상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ighthouse> 리뷰  (0) 2020.09.17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리뷰  (0) 2020.09.06
<메이드 인 어비스> 리뷰  (0) 2020.08.27
<미드소마> 리뷰  (0) 2020.08.09
A Short Hike 리뷰  (0) 2020.07.24